개인적으로 성경(經)이라고 하지 않고 성서(書)라고 하는 자들의 신앙관은 일단 의심하고 본다. 원어의 직역 핑계를 대는데, 내 보기엔 경전이 아니라 그저 책이라는 인식에 애착이 가는 것이다. 심지어 불자들도 불서라 안하고 불경이라고 하더만. 신본주의가 그만큼 거북한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신명 표기가 개신교에 자리 잡은 일련의 과정만 살펴도 한국의 기독교는 왜 더 극성맞은 반공 파쇼가 되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들어야 한다. 이는 자제와 자성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것, 세상을 섭리하시는 이의 공의에 달렸다 성경이 기록하기 때문이다.
하늘님의 이전 한글 표기는 하ᄂᆞᆯ님이었다. 본래 ㅡ와ㅏ의 중간 발음이었던 ᄂᆞᆯ이 이북에서는 하날에 가깝게 이남에서는 하늘에 가깝게 발음됐는데 이북인이 주도한 개신교는 자연스럽게 ㄹ 음값이 탈락된 하나님이라는 빠롤을 채택했고 남한의 랑그에 따라 유일이라는 시니피에가 붙은 것이다.
교회의 반북은 왜 아직 유효한가? 북한의 지하성도들은 발각 시 그 어떤 정치사범보다도 더 잔혹한 처분을 받는다. 남녀노소 불문 그 어떤 종류의 사면이나 인간적 처우가 불허된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출애굽을 인도하고 이집트에 재앙을 내린 이유가 무엇이었나? “Let my people go and worship me”
남한 교회는 왜 반공 색채를 띄었는가? 6.25 이후 남한에서 교회를 개척해 부흥을 일으킨 걸출한 목사들은 다수가 본래 이북에서 신앙생활하던 이들이다. 형제아우 하던 자가 맑스의 세례를 받더니 신자들을 죽창으로 찌르는 통에 체제를 피해 출향하기에 이르니 김일성이 적그리스도가 되는 셈이다.
한국인의 종교성은 유교적 상위와 무속적 하위로 구성되어 있다. 그 기질은 기독교 토착화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주자학 책상물림 가락이 어디 가나? 책으로 하는 신앙 기독교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좌빨교, 우빨교, 퀴어교 같은 혼종의 역습에도 굳건하다. K-교회는 당신 편견처럼 만만하지 않다.
한국 개신교가 근본 없이 제멋대로라는 인식을 밀어붙이는 군상들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본토 중국에서 공맹사가 희미해지는 동안 주자학으로 이어받아 근본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민조쿠다. 구미에서 자취를 감춘 개혁주의는 한국에 높은 해상도로 간직되어 있고, 전수자의 수준도 굉장히 높다.
지금 가열차게 뽕 들이키는 분들, 저렴한 의료비용을 상수로 두고 후생들 논하시는데, 정부실패의 티핑포인트가 가깝다. 그것 뿐인가? 의보험/연금보험/교통인프라/전기/난방가스 등 비용 전가로 유지되는 모든 사회 기반시설/서비스가 유지 불가능한 임계점에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다.
역사논쟁 만큼의 허업도 드물다. 역사에 가치나 신성을 부여하려고들 열심인데 다 부질없다. 동서고금에 역사는 언제나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호출하는 토템이자, 서사(plot)라는 이름의 음모(plot)론 재료였다. 당장에 수년 전 일도 이념에 따라 기억과 진술이 갈리는게 역사다.
진정한 사과를 하니 마니.. 진짜 웃기는 소리좀 그만해라. 한국인이 사과를 받고 싶은 이유는 진정한 해우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조아림을 보고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서다. 상대방을 벌거벗기고 목에 개목걸이 채워 산책시키며 망신을 주려는 가학적 심성의 연장이지.
정교분리가 당연한 사회에서 사니까 모든 종교가 응당 그러할 줄 아는데, 이것도 다 기독교가 도출한 제도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누가 한 말인지 찾아봐라.
유일신 종교는 폭력을 내재한다? 막스주의자는 노동을, 리버테리언은 자유를 도그마 삼는다. 모든 이념과 종교는 도그마를 가진다. 다신교인 힌두교는 얌전할까, 힌두 내셔널리즘이라고 들어봤나? 교회 모스크 불지르고 다닌다. 우리 조상 유교주의자들은 불상 스님 목따고 불당을 서원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속에 있는 생각을 다 드러내는걸 교육이 안됐거나 사회화가 안됐다고 한다. 세상 천지에 속에 든 오물을 그대로 내보이는 것을 미덕이라고 하는 나라는 없다. 대표적 외향/직설국가 미국도 때와 시에 맞는 어법과 속내를 가리는 처세가 기본이다. 그 방법론에서 차이가 날 뿐이지.
보유세 중부과 정책은, 금융자산 빵빵한 대대로 부자나 현금흐름 좋은 마켓 승자 빼고는 전부 서울 밖으로 꺼지라는 정부의 강제집행과 다름없다. 이를 지지하는 무주택자나 민중을 위한다고 자뻑하는 민주당이나 정말이지 한심함이 바닥이 없다. 무산자들이 왜 보수당을 지지하는지 진짜 모르겠냐.
음모론에 매몰되는 유형의 사람에겐 약이 없다. 한 음모론에서 다른 음모론으로 옮겨갈 뿐. 대개 떨어지는 쓸모감을 남들이 모르는 비의나 음모를 간파하고 있다는 우월감으로 보상하려는 것인데, 말하자면 자위인 셈이다. 이런 것으로 정치에 나서면 백방 망한다. 결과를 내는것에 관심이 없으니까.
민족주의에 극성으로 심취하면 유사 영적체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데올로기는 본래 세속화된 교리다. 그러니 실증이나 논증으로 고착화된 집단 기억이나 사관이 바뀌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부터 타고 올라가는 상향식이 아니라 상부구조의 전이로부터 타고 내려와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늘의 도성 => 왕권신수설과 국왕의 두 신체 => 법치주의와 국체 개념으로 이어지는 국가 영속 도상은 일본이 재해석해 황국의 천황과 신민으로 변용했다. 사쿠라처럼 신민들은 매번 피었다 지지만 천황가는 영원하다는 것이다. 일본이 달라봐야 얼마나 다른가. 너나 나나 인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