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 살자고 했던 미국,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다 보니,
문득 처음 미국에 오기로 마음먹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때도 지금도,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
미국에 가겠다고 마음먹고
답사 삼아 잠깐 다녀오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는 침묵하시다가 이렇게 물으셨다.
"고생할 것 같은데, 굳이 뭐하러 미국까지 가려고 하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남들은 아이들 조기유학도 보내고 하는데,
저도 같이 가서 자식 공부시키며
10년만 버티고 돌아와도 손해는 아닐 것 같습니다."
내심 못마땅해하시던 아버지도
손자 이야기가 나오자 더는 반대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나는
'10년만 살다 돌아오자' 라는 마음으로 미국에 왔다.
처음은 쉽지 않았다.
아들도, 우리 부부도, 모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말도 문화도, 사람도 일도, 모든게 낯설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아들은 점점 이곳 생활에 익숙해졌고,
지금은 미국에서의 삶에 아주 만족해하며 살고 있다.
아들이 만족해하니
나도 덩달아 만족하게 된다.
나의 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셨을 것이다.
자식에게 더 나은 길을 보여주고 싶어서,
자기 삶의 고단함은 말하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책임을 짊어지고 살아오셨던 분
나는 아버지가 걸어온 길 위에 서서
또 한 번 같은 선택을 했을 뿐이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버텨주셨던 것처럼
내가 내 아이를 위해 버텼던 시간
세대는 바뀌어도
아버지의 책임감만큼은 그래도 이어지고 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예전에 화폐경제학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이 학생들과 대담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어디갔지.. 다시 보고 싶은데 안찾아짐..)
한 학생이
"덜 발전된 나라, 덜 가진 가정에서 태어난 우연에 의해서 운명이 결정되는데 우연히 상대적으로 덜 가진 사람들은 동일하게 발전해도 남보다 적은 자본으로 끝나게 됩니다"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모두 동일한 시작점을 가질 수 있도록 상속세를 100%로 올리는 것입니다. 강제적으로 부를 재분배해야 합니다."
라고 발언하자, '고삐풀린 망아지같은 소리' 라고 일축하며 한 말이
"세상은 개인사회가 아니라 가족사회입니다. 최고의 동기부여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가족입니다. 사람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일하고 자식들을 위해 스스로를 헌신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라고 한다.
가족이 아니라면, 그리고 결국 내가 죽고 100% 국가에게 귀속된다면 그렇게 피나게 노력하지 않고 사치와 향락에 물들거라는 거다.
내가 투자를 시작한 이유?? 내가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이유?? 내 아들이다.
난 총각 때 "유럽 건너가서 거지나 하고 살면 여기저기 구경도하고 제일 행복할 것 같다"거나 "그냥 평범한 회사원으로 가족 일궈서 적당히 먹고 사는게 꿈" 이라는 말을 하고 살았다.
운동하던 선후배들이랑 "우리에게 페라리는 없지만 목에는 금메달이 있고 돈 버는 재주는 없지만 로우킥은 잘찬다" 하며 웃었던 기억도 있다.
단 한번도 내가 돈을 많이 벌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이런 나를 바꾼건 내 앞에서 앉아서 TV를 보고 있던 말도 잘 못하던 시절 내 아들의 '등' 이었다.
그게 그렇게 서글퍼 보였고, 난 여기까지 왔고 내 앞은 저앞에 보이고 있다.
그래서 난 실패할 수 없고 해내야하고 쉬는 것도 사치인거지..
대한민국 대통령은 여러 건의 형사재판에 연루되어 있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검찰이 죄 없는 사람을 무리하게 기소하고, 끝없는 재판으로 피를 말려 죽이려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재판에 출석하면서 지팡이를 짚고 휘청거리던 모습을 방송에서 본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대통령 아니라 누구한테도 재판은 힘든 과정이다.
그런데 의사들을 향해서는 사뭇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의사는 무슨 성역이냐?"
"떳떳하다면 재판에서 해명하면 될 것 아니냐?"
누군가에게 재판은 사람의 피를 말리는 가혹한 과정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히 감수해야 할 절차가 된다.
같은 재판인데도 누구를 향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니고, 정치적인 입장을 논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눈에 대통령은 부처고, 의사는 돼지인가?
무죄를 받는 데 5년이 걸렸다
2022년 2월, 제왕절개 다음 날이었다.
산모가 소독을 받으러 걸어가다 쓰러졌다.
의사는 5분 안에 달려와 산소를 주고 심폐소생술을 하고 큰 병원으로 보냈다. 수술 닷새 만에 산모는 폐색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수술 전에 그 위험을 설명하고 동의서도 받아 둔 뒤였다.
의사가 기소됐다.
혐의는 사망이 아니라 진료기록 한 줄이었다.
구급대원이 넣은 기도 유지 기구를 자기가 넣은 것처럼 썼다는 것이다. 1심은 벌금 500만 원, 대법원은 무죄. 유족은 4억 6천만 원을 청구했고 1심에 이어 2심도 의사가 이겼다. 11월 4일의 일이다.
나는 30년 동안 심장을 봤다.
쓰러진 사람에게 달려가는 5분은 짧다.
긴 것은 그다음이다.
형사 3심에 민사 2심, 햇수로 5년…
형량은 시간으로 매긴다.
벌금 500만 원은 지워졌지만
5년은 아무도 지워 주지 않는다.
무죄도 형량이다. 다만 형기를 다 치른 뒤에 받는다.
무죄 판결문은 기소장이 왔던 우편함으로 온다.
5년 동안 그 우편함을 열 때마다 의사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산부인과를 고를 젊은 의사들은 그 얼굴을 먼저 본다.
내가 살고 있는 루이지애나에 들어서는 메타의 초대형 데이터센터, ‘하이페리온(Hyperion)’.
워낙 땅이 넓고 인구밀도도 낮은 지역이다. 비어 있는 땅도 지천인데, 과연 데이터센터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몇 가구나 될까?
현대제철이 들어설 예정인 부지에도 직접 가본 적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이 대부분이었다.
제철소라고 주민들이 100% 찬성만 할까?
환경단체의 반대 목소리도 당연히 있다.
사업비가 얼마인데 그 외지에 혹시 몇가구 있다면 보상을 안해줄까?
난 이해가 안간다.
Even buying beer at Walmart requires an ID.
Yet, to some people, voting in an election seems far less important than buying beer at Walmart.
대한민국 대통령은 여러 건의 형사재판에 연루되어 있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검찰이 죄 없는 사람을 무리하게 기소하고, 끝없는 재판으로 피를 말려 죽이려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재판에 출석하면서 지팡이를 짚고 휘청거리던 모습을 방송에서 본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대통령 아니라 누구한테도 재판은 힘든 과정이다.
그런데 의사들을 향해서는 사뭇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의사는 무슨 성역이냐?"
"떳떳하다면 재판에서 해명하면 될 것 아니냐?"
누군가에게 재판은 사람의 피를 말리는 가혹한 과정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히 감수해야 할 절차가 된다.
같은 재판인데도 누구를 향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니고, 정치적인 입장을 논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눈에 대통령은 부처고, 의사는 돼지인가?
무죄를 받는 데 5년이 걸렸다
2022년 2월, 제왕절개 다음 날이었다.
산모가 소독을 받으러 걸어가다 쓰러졌다.
의사는 5분 안에 달려와 산소를 주고 심폐소생술을 하고 큰 병원으로 보냈다. 수술 닷새 만에 산모는 폐색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수술 전에 그 위험을 설명하고 동의서도 받아 둔 뒤였다.
의사가 기소됐다.
혐의는 사망이 아니라 진료기록 한 줄이었다.
구급대원이 넣은 기도 유지 기구를 자기가 넣은 것처럼 썼다는 것이다. 1심은 벌금 500만 원, 대법원은 무죄. 유족은 4억 6천만 원을 청구했고 1심에 이어 2심도 의사가 이겼다. 11월 4일의 일이다.
나는 30년 동안 심장을 봤다.
쓰러진 사람에게 달려가는 5분은 짧다.
긴 것은 그다음이다.
형사 3심에 민사 2심, 햇수로 5년…
형량은 시간으로 매긴다.
벌금 500만 원은 지워졌지만
5년은 아무도 지워 주지 않는다.
무죄도 형량이다. 다만 형기를 다 치른 뒤에 받는다.
무죄 판결문은 기소장이 왔던 우편함으로 온다.
5년 동안 그 우편함을 열 때마다 의사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산부인과를 고를 젊은 의사들은 그 얼굴을 먼저 본다.
강의실에 책걸상만 갖다 놓는다고 의과대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의학교육을 위해서는 학생들이 임상 실습과 수련을 받을 수 있는 교육병원과 충분한 교수진, 의료 인력이 필수적이다.
남원 지역 환자들조차 중증 질환 치료를 위해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는 현실에서, 남원의료원을 확충해 의대 교육병원으로 운영하겠다는 구상이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건물과 시설은 예산을 투입하면 확충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교수진과 전문 의료 인력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더군다나 그동안 의사들을 마치 죄인처럼 취급해 온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의사가 남원으로 내려가 열악한 여건 속에서 진료와 교육을 동시에 감당하려 하겠는가?
서울아산병원에도 극소수에 불과한 고난도 개두술 전문 신경외과 교수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수도권의 대형병원조차 필수의료 분야 교수진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몇 명이나 남원까지 내려가 고된 진료 업무를 감당하면서 후학 양성에 헌신하려 하겠는가?
의과대학 설립의 핵심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 교육 인프라다. 의대 정원을 늘리고 시설을 확충한다고 해서 양질의 의학교육과 필수의료 인력이 저절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미용 의사 많아지면 낙수효과로 필수의사도 많아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라리 그런 분들 주장대로 미용의료 전문 의전원을 만드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구독자 8.45백만 의 자칭 한국인 무슬림 다우드 킴
인천에 이슬람 성전 짓는다고 후원금도 모금하고 있는데
2019년 성범죄 의혹으로 피해자와 합의한 뒤 기소유예
2024년 이슬람 성전 후원금 사적유용등으로 고발 당함
X에서 손가락 부러져라 글 올려봐야 티도 안나는데
'한국인 무슬림' 타이틀 달고 유튜브를 하니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구독해주고 돈도 보내주네
이 정도면 블로오션도 아니고 땅 짚고 헤엄치기다.
알고 보니 전 세계 무슬림 친구들 너무 착하고 순진하다.
결정적으로 후하다.
나도 앞으로 좀 친하게 지내야 하나???
대학입시에도 다자녀 전형이나 농어촌 전형 같은 가족의 특성으로 입시에 혜택을 준다.
소득이 적어도 1자녀, 도시에 거주하는 학생은
소득이 많은 다자녀, 농어촌 거주하는 학생에 비해 불리한 것이다.
이런 제도가 한두개가 아니다.
다문화 가정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원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명색이 진보진영에 속한 대통령인데, 문화와 언어의 차이로 불편을 겪는 다문화 가정을 향해 '역차별' 이라는 단어는 솔직히 어리둥절하기 그지 없다.
부처 눈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엔 돼지만 보인다
《평등을 요구하는 것과 우대를 요구하는 것은 다릅니다》
다문화가족 우대 정책의 축소 검토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예고됐다고 합니다.
먼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다문화가족 역시 존중받아야 할
우리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문화와 언어의 차이로 불편을 겪는다면 지원해야 하고,
부당한 차별을 받는다면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구분해야 합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다른 사람보다 먼저
혜택받을 권리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번 논쟁은 공공산후조리원 우선 입소처럼 가족의 특성만으로 우선권을 부여하는 제도가 합리적인가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렇다면 따져볼 것은 분명합니다.
소득이 같은 두 가정에서 한쪽만 우선권을 받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실제로 더 큰 어려움이 있어서입니까?
아니면 과거에 만들어진 규정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까?
제도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유지하면 됩니다.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고치면 됩니다.
필요한 지원이 부족하다면 오히려 늘려야 합니다.
그것이 행정이고 정책입니다.
물론 당사자들이 정책에 반대하고
기자회견을 열 자유도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제도의 형평성을 검토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곧바로 차별이나 혐오라고 규정해서는 생산적인
논의가 어렵습니다.
복지의 목적은 집단 사이에 특권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한국인 가정이든 다문화가정이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은
어려운 사람입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고통이 국적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책은 국적이나 가족의 이름표보다 실제 생활 형편과 지원 필요성을 먼저 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평등은 누군가의 우대를 영원히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도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도록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필요한 지원은 지키고, 불합리한 우대는 검증합시다.
그것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복지정책의 출발점입니다.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SKY 캐슬' 을 보면,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등장인물 박영재의 포트폴리오를 얻기 위해 주변 사람들이 온갖 공을 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 사례도 그렇고, 한동훈 전 장관의 딸이나 나경원 의원의 아들과 관련해 논란이 되었던 사례들을 봐도 그렇다.
여기서 그 과정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에서 보면, 이들이 학생 시절 쌓았다고 알려진 활동과 이력은 그 자체로 상당히 화려해 보인다.
미국도 비슷하다. 부모가 대학 교수나 연구자인 경우, 자녀가 고등학생 때부터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논문에 이름을 올리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아마 우리가 모르는 ‘비급’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어떤 기회를 찾아야 하는지 같은 정보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비급을 안다고 해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정보뿐 아니라 인맥, 시간, 돈, 환경이 함께 있어야 가능한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지도를 들고 출발하고, 누군가는 지도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출발한다.
솔직히 입시뿐이겠는가
돈이나 외모 같은 것도 결국은 하나의 ‘비급’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시작하고, 누군가는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원래 어느 정도는 불공평하게 돌아가는 곳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마음은 편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차이를 노력만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답답해지니까.
김건모의 히트곡 '잘못된 만남' 가사에 나오는 ‘내 애인을 빼앗아간 남자’가 다름 아닌 유영석이다.
그리고 가사 속 ‘또 다른 내 친구’는 이 곡을 작사·작곡하고 프로듀싱한 김창환이다.
재미있는 건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창환이 작곡한 홍경민의 '흔들린 우정' 은 ‘애인을 빼앗아간 남자 입장에서 본 '잘못된 만남’이라고 하기도 하고,
역시 김창환이 만든 엄정화의 '몰라' 는 ‘여자 입장에서 본 이야기’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실제로 세 곡이 하나의 서사로 기획된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연결해서 듣다 보면 제법 그럴듯하고 재미있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유영석은 아마 '복면가왕'의 패널로 더 익숙할지 모르지만, 한때 푸른하늘의 존재감은 상당했다.
특히 개인적으로 '네모의 꿈' 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이런 가사를 썼을까’ 싶다.
단순한 동요 같은 멜로디에 세상을 네모난 틀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냈는데, 지금 들어도 묘하게 날카롭고 시대를 타지 않는다.
'닥터X' 의 문제의식에는 공감되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지금 한국 의료에서 시민들이 가장 절실하게 체감하는 문제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응급, 외상, 분만 같은 필수의료의 붕괴 아닐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 속에서 비판받는 외과의사들은, 현실에서는 오히려 그 무너지는 시스템 안에 끝까지 남아 있는 의사들이다.
정작 왜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떠나 피부미용과 비급여 시장으로 빠져나가는지, 왜 남아 있는 사람들만 더 지치고 힘들어지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의료계를 비판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비판의 화살이 정말 맞는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무너지는 시스템을 붙잡고 있는 의사들은 때리면서, 그 시스템을 떠난 의사들에게는 아낌없이 돈을 쓰며 피부 시술을 받는 대중의 모습.
이 모순을 방치한 채 의료 체계의 붕괴를 논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씨네21 연재 칼럼에서는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를 다뤘다. 드라마가 다룰 수 없는 일종의 성역이란 없다는 듯 <닥터X>는 논쟁적인 나머지 그간 방치되어 온 불편한 의료 이슈를 가림 없이 끄집어낸다. 드라마가 수행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란 무엇인가.
📍 cine21.com/news/view?mag_id=…
내 지인 50만불 미국 투자이민 옴
물론 수수료가 꽤 많이 들었지만
그 기간동안 환율오르고,
50만불은 수익까지 계산해서 돌려받음
아들 2명은 이름있는 주립대 입학함
유학과 비교해서 학비 엄청 저렴하고
영주권자니 졸업후 취업에 불이익이 하나도 없음
그러고 본인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감
전업투자인데 한국에서는 세금안내지만
미국에는 세금을 많이 내니 아들 2명 대학 다니는 상황에서
미국에 계속 거주할 필요성도 못느낌
미국에 사놓은 집에서 아들 2명 계속 거주하고
내가 세법까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 집도, 그리고 매년 보낼 수 있는
일인당 연간 10만 달러까지 절세도 하고
하여간 있는 사람들은 길이 많습니다.
미국 사립대 학비가 비싼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재정보조, 장학금, 주립대, 학자금 대출 등 다른 선택지도 많다.
그래서 미리암 위크스의 사례를 단순히 “학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 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미국에서는 오히려 개인이 선택한 삶의 한 형태로 보는 시각도 많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8~19살의 사람이, 그 선택이 평생 남길 결과까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을까?
이건 성인물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젊은 시절 선택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질문이다.
학자금 6만 달러 갚으려고, 성인배우 데뷔했다가 신상 털린 명문대생 근황.txt
명문 듀크대 1학년(만 18세) 미모의 여대생 미리암 위크스,
1년에 6만 달러(약 8천만원) 달하는 살인적인 등록금 감당 못 해서 '벨 녹스(Belle Knox)'라는 가명 파고
방학마다 LA 날아가서 편당 1,300달러 받고 성인영화 찍음.
근데 2014년 1월, 같은 학교 남학생이 영상 보다가 알아채고 자기 기숙사/남학생 사교클럽(Frat)에 소문 쫙 퍼뜨림.
며칠 만에 캠퍼스 전체가 발칵 뒤집히고 퇴학 요구에 온갖 악플과 살해/성폭행 협박까지 쏟아짐. 🤯
• 피어스 모건의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WBD 산하 CNN 인터뷰 박제:
"나 착취당한 적 없고, 이 일 사랑하며 안전하게 일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인터뷰 깜.
• 반전 폭로:
알고 보니 밴더빌트 전액 장학금 제안 걷어차고 굳이 듀크대 온 데다,
듀크에서도 이미 재정 지원(장학금) 받고 있었다는 사실 털리며 여론 더 험악해짐ㅎㄷㄷㄷㄷ
• 결말 및 현재 근황:
- 2016년 듀크대 무사 졸업 (당시 홍보담당자 피셜 학자금 빚 0원 청산)
- 평생 라이프타임 영화로도 제작됐는데 본인 몫 개런티는 땡전 한 푼 못 건짐
- 2018년 개명하고 신분 세탁 후 로스쿨 진학한 것으로 알려짐.
지금은 과거 벨 녹스 시절 일절 언급 안 함
학자금 빚 0원으로 듀크대 타이틀 땄지만,
평생 인터넷에 본명과 성인영화가 영구 박제됨.
이게 뭐... 맞는거냐? ㅎㄷㄷ
Not financial advice
영국이 산업혁명을 통해 어떻게 자국의 국력을 키웠고 인도 같은 식민지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뒤 돌아보면 다가올 피지컬 AI 시대에 대해 유토피아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기는 힘들거 같다.
미국의 제조업 리쇼어링을 보고 있으면 지금까지는 과거와 똑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고 김현식은 1990년, 불과 3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너무나 젊은 나이지만,
당시 분위기를 떠올리면 마치 가요계의 큰 어른이 세상을 떠난 것처럼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당시 활동하던 가수들 중 김현식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조용필, 전영록, 윤수일, 양희은과 몇몇 트로트 가수 정도였다.
조용필조차 당시 40세였다.
그 시절까지는 가요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거 같다.
박정희는 46세에 대통령이 되었고, 김종필은 45세에 국무총리가 되었으며, 전두환은 49세에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 시대를 직접 경험한 세대가 오늘의 40대를 보며 “아직 어려서 뭘 모른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묘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어쩌면 나이가 사람을 늙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특정한 나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사람을 젊게도 늙게도 만드는 것인지 모른다.
한 시대에는 나라를 이끌 나이였던 40대가, 다른 시대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로 불린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는 젊어보이고 싶어서 오바하는 의미의 영포티로 불린다.
재미있다.
집에서 멀쩡히 잠을 자다가도 젊은 사람이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사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 심정지가 발생하고 청색증까지 온 중증 환자가 병원에 도착해 결국 사망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죽음을 곧바로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 의료계를 비판하고 싶다면 엉뚱한 곳에 화풀이할 게 아니라, 왜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떠나 미용의료로 몰리는지 그 구조부터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사직한 아주대 소아응급실 전문의들도 마음만 먹으면 미용의료 쪽으로 가서 훨씬 나은 워라밸과 수입을 누리며, 지금보다 적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힘든 소아응급실을 지키고 있었을까?
왜 그렇게 힘든 자리를 선택했고, 또 무엇이 결국 그들을 떠나게 만들었을까?
누군가를 비난하기 전에 최소한 이 질문부터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필수의료를 지키는 사람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왜 필수의료 의사가 부족하냐고 묻는 사회라면 결국 가장 큰 피해는 다시 환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급성심장정지’, 즉 흔히 말하는 심장마비로 돌연사하는 환자가 매년 약 3만 3천~3만 5천 명 정도이고, 그중 절반가량이 가정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매년 1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집에서 갑작스럽게 심장이 멎어 사망한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죽었으니 반드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라면, 이런 경우에도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가족 중 한 사람이 잠을 자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런데 사람이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이 들이닥쳐 집을 압수수색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정상적인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멀쩡해 보이던 젊은 사람의 심장도 집에서 갑자기 멎을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중증 환자와 아픈 사람들이 모여 있는 병원에서는, 사람이 사망했다는 사실 자체가 곧 누군가의 잘못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가?
병원은 죽어가던 사람도 살려서 집으로 돌려보내는 곳이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까지야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제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누가 책임지는가?
오늘만 해도 아이가 아파 응급실을 찾았지만 아주대병원에 자리가 없어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겨우 다른 병원에 갔다는 글을 봤다.
의료진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점점 더 방어적으로 진료하고, 병원이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를 받지 않으려 하기 시작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누구에게 돌아갈까.
결국 그 대가는 다시 환자와 가족들이 치르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아프고 죽는다.
그 환자와 가족은 바로 우리들이다.
가만히 앉아서 술 마시고 있는데 대놓고 인종차별을 당함.
내 쪽을 보면서 눈을 찢는 시늉을 하더니,
손 높이를 바꿔가며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은 다르다고 하더라.
세 번째까지 그러길래
“지금 나 보고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자기들끼리 또 웃음.
영상 소리 잘 들어보면 내가 “치노? 코레아노?” 하고 묻는데, 뒤에 있던 사람은 “일본인”이라고 하면서 쪼갬.
영상 찍을 때까지 계속 웃더니,
직원도 봤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내 피부가 좋아서 그랬다는 식으로 둘러댐.
처음엔 한 직원도 저 사람들 편을 들었는데,
다른 여직원이 “나도 저 행동을 봤다”고 하니까 조용해짐.
그러면서도 나를 말리더라.
마지막에 나도 영상 찍으면서 손가락 욕을 했는데,
계속 웃던 할아버지가 그제야 정색하고 화냄.
이렇게 대놓고 당한 건 처음이라 나도 흥분했음.
유명해지고 싶다니 공유 좀 부탁함.































